세월이라는 홍두깨로
두들겨 맞다보니
군데군데 멍 안든 데 없어도,
구김이 펴지고,
광택과 촉감이 살아나고,
풀기가 골고루 배었다.
이제는 언제 때릴 지도 알겠고,
언제 무를 지도 알겠다.
우리 참 나름 고생 많았다.
그 속에 담은 말들은 다 모르겠지만
사연 참 많은 얼굴들이라
다 안들어도 알겠다.
맞제.

 

#정의헌, 2009년부터

 

맞제? 맞다!

어느 누가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많은 사진들을 찍었을까? (지금은 간간이 찍고 있지만…)
나의 사진 하나하나가 칸투칸에 기록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칸투칸에 갓 입사한 29살의 정의헌은 날렵한 턱 선이 있었다.
이제는 30살 중반을 넘어 불혹을 향해 향해 달려가고 있다. 턱 선은 두 겹이 되어가고 있지만, 반대로 정신은 더욱 날렵해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 다듬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태함에 정신이 무뎌질 것 같아도, 세월의 홍두깨는 정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사치스럽게도 이제는 자신을 돌이켜 볼 연륜이라는 것이 생기는듯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딱 2번 눈물을 흘렸다.
칸투칸에 오기전 직장에서의 일이다. 1년여 동안 함께 일했던 입사 동기가 퇴사할 때 눈물을 흘렸다.
그 친구와 함께해 왔던 수많은 고생과 서러움에 그 친구가 떠난 날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에 의한 눈물이었다. 순수했었나 보다.

그리고 두 번째 눈물은 최근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최근 몇 년 간의 지난 일들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쌓여있던 무거웠던 중압감을 잠시 내려놓음으로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같은 눈물이었다.
이 날의 눈물은 그 이전에 흘렸던 눈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말 말로 표현이 어려운 감정이며 이제까지는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우리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잘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하는 칸투칸에서의 날들.
그런 날들의 연속이 나를 눈물짓게 하였다.
가슴에서의 뜨거운 눈물이 나올지 몰랐다. 나는 그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칸투칸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자는 일반적인 회사의 직원이며, 후자는 칸투칸의 직원이다.
후자의 직원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칸투칸에서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직원 정의헌으로 고생 많았다.
아니다. 고생했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할 날들이 남았다.

#칸투칸의 정신, ‘여기서 이러시면 없어보여요’
#회동동

 

 

#김종식, 2009년부터

스물아홉에 입사하여 서른일곱이 됩니다.
결혼도 했고, 집도 샀습니다.
그때의 젊음은 칸투칸의 정신이나 칸투칸의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칸투칸이란 브랜드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었습니다. 좋은 면도 있지만 부족한 면도 있습니다.
거울속 주름진 얼굴을 보면 마음에 들기도 들지 않기도 하는 것처럼.

칸투칸은 나의 인생을 반추하는 브랜드입니다.
나는 나의 브랜드를 사랑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나는 칸투칸을 사랑합니다.

 

#회동동 #V08낚시조끼
#K62아쿠아 트레킹화 촬영 #범람한 회동천

 

#휴대용매트 촬영 #족구하고 놀다가 사진촬영

 

김종식, 정의헌님. 여러분을 모시고 난 뒤에 항상 희생만을 강조한 점에 대해 죄송합니다. 솔선수범만 이야기하고, 희생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늘 자기극복을 통해 해결하라고 말해왔습니다. 늘 무언가에 화가 난 태도로 대했습니다. 형평성을 맞춘답시고, 가장 오랫동안 호흡해왔던. 그리고 나를 누구보다도 많이 도와주었던 가족과 같은 여러분들을 늘 남 취급한 것에 대해서 미안합니다.
언젠가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나의 애정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동료 김종식, 정의헌님.
당신들이 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항상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헌신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칸투칸 이병철.

#나중되면 써먹을데가 있을거라고 했던 ‘팀 에베레스트 프로 등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