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름이 우리의 증거가 되기를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 거지’ 손택수 시인의 시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의 첫 구절이다. 그토록 먼 거리를 가 닿을 만큼 갸륵하고 진한 아내의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가끔 사람 사이에 천리나 되는 거리가 생기기도 하는 서러움을 노래하는 시다. 그 절절한 사람의 마음에 푹 가슴에 젖다가도, 문득 이 시의 첫 구절만…

맥거핀 라이프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무얼 하든 남 다르고 어디서든 돋보이는. 과감한 선택으로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역경의 끝에서 마침내 특별한 가치를 창출하는. 그들은 귀감이 된다. 영웅담은 빠르게 퍼진다. 요즘엔 좋아요를 타고 더 빨리, 보다 멀리.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면 말이 다 돈이 된다. 책이 나오고 방송을 타고 강연을 다닌다거나. 누가 봐도 비범한 그들은 참나, 겸손까지 갖추었으니!  …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이다 : 하얀 헬멧

  이번 노벨상은 여러모로, 고은 시인이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때 보다 더 많이 회자 되는 것 같다. 물론 노벨 문학상은 파격적이었다. 노벨상의 권위야 말할 것 없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오스카를 받기 전까진 그의 오스카 수상이 더 재밌었던걸 보면 아직 어리구나 싶다. 뭐, 이런 나라도 노벨 평화상만큼은 언제나 흥미 진진하다. 세상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라니, 이…

30원 어치의 노동

    정확한 날짜를 기억한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생은 전환점을 맞기도 하나보다. 그 날 들었던 한 마디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 2010년 12월 12일, 오전 10시경, 4호선 오이도행 열차, 그 안에서 나는 멘토를 만났다.   중앙역에 가는 길이었다. 주말이면 웨딩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다녔는데, 그날은 안산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오전 11시까지는 식장에 도착해야 했다. 내가 사는…

이 열정에는 땔감이 필요합니다

  영국에 가면 꼭 구경 해야 할 4대 마켓이 있다. 버로우 마켓, 캠든 마켓, 브릭 레인 마켓 그리고 노팅힐의 서점으로 유명한 포토벨로 마켓. 다양한 먹거리들과 신선한 재료까지 가득한 마켓에는 사람들도 활기 넘치게 북적인다.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음악을 연주해 주위를 아름답게 만드는 그 순간을 파는 사람도, 그림을 그려 파는 사람도, 다들 다양한 것들을 판매한다. 신선한…

진짜냐 가짜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상: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 현실: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 요즘 VR, 즉 가상현실이 인기다.VR은 VIRTUAL REALITY의 줄임말로 특수한 안경을 사용하여, 시각, 청각 등 감각을 통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내부에서 가능한 것을 현실인 것처럼 유사 체험하게 하는 유저 인터페이스 기술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참 아이러니하다.가상은 사실이 아닌 것이고 현실은 사실이기…

시소를 기억하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는 시소를 본 적은, 없다. 양쪽 끝엔 반 토막이 난 허름한 타이어가 모래 바닥에 푹, 꽂혀있었고 늘 시소의 어느 한 쪽은 그 타이어 위에, 나머지 한 쪽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런 장면을 단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만약 시소가 저 혼자 균형을 맞춰 수평으로…

계단 한 칸의 도전

우리의 길은 경사지다. 우리의 길은 오르막이거나 내리막. 우리의 길은 늘 한 권의 책, 그 가운데의 어느 페이지에 머문다. 우리의 길은 어떤 누구에겐 길이 아니었던 곳. 힘든 날이 오더라도, 결코 안락한 소파를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체취가 배어 있는 그리운 침대에 몸을 내던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휴식은 곧 우리의 고뇌. 겨우 엉덩이 두 짝이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을…